
일본 가자마자 알바부터 찾았던 이유
일본에 간 건 2019년 4월이었다. 전역하고 5일 있다가 바로 건너갔다. 군대에서 히라가나랑 기초 회화 정도는 봤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, 막상 가보니까 진짜 하나도 안 들렸다. 편의점에서 뭐 하나 사도 점원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고, 그냥 “아, 오케이, 다이죠부”만 반복하던 시기였다.
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겁보다 깡이 더 컸다. 일본어도 못하면서 알바부터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. 지금 돌아보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는데, 어쨌든 그때는 “일본어 빨리 늘려면 알바를 해야 한다”는 생각이 머릿속에 꽤 강하게 들어 있었다.
게다가 그 시절엔 괜한 로망도 하나 있었다. 카페 알바를 해보고 싶었다. 살면서 카페 알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, 일본 와서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. 문제는 일본어도 잘 못했고, 전역 직후라 머리는 짧았고, 살도 많이 쪄 카페 알바상은 아니었다는 점이다. 그런데도 카페 알바를 찾고 있었다.
카페인 줄 알고 갔다가 전혀 다른 곳이었다

한인 커뮤니티에서 카페 구인 글을 하나 봤다. 이름이 쎄시봉 카페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. 이름만 보면 왠지 좀 복고 감성 있는 카페 같고, 일본어를 좀 못해도 가능할 것 같았다. 그래서 신오쿠보까지 갔다.
이상했던 건 공고에 주소가 안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. 그래서 신오쿠보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었다. 카페 공고 보고 연락드렸는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했더니, 갑자기 “보이프렌드로 오세요” 이러는 거다. 순간 “보이프렌드?” 싶었지만, 일단 가라는 대로 갔다.
입구부터 느낌이 좀 이상했다. 그때는 일본 온 지 얼마 안 돼서 보이즈바 같은 개념도 잘 몰랐는데,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조명도 엄청 어둡고 어떤 사람이 여자 손님한테 K팝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. 거기서 바로 이해됐다. 아, 카페가 아니구나. 속았구나.
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일단 들어갔다. 그쪽에서도 분명 카페 구인이라고 해놨으니 어느 정도는 멀쩡한 사람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, 일본어도 잘 못하고 전역 직후 티도 나는 사람이 들어왔으니 서로 첫인상이 썩 좋을 리 없었다. 나도 황당했고, 저쪽도 당황한 느낌이었다.
앉아서 얘기하다가 대놓고 물어봤다. 이거 불법 아니냐고. 그쪽에서는 자기들은 합법적으로 하고 있고, 일본어 배우기엔 이런 알바가 최고라는 식으로 말했다. 또 여기서 일하는 유학생들 봐라, 불법이었으면 하겠냐는 말도 했다. 지금 생각하면 참 뻔한데, 그때는 일본어를 빨리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순간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.
결국 면접은 끝났고, 집에 가는 길에 혼자 계속 고민했다. 만약 붙으면 가야 하나,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, 계속 그런 생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연락이 안 왔다. 떨어졌다.
그게 또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.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떨어지기까지 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.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데, 그때는 조금 자존감이 떨어졌다ㅋㅋ.
결국 버틴 건 한국 식당 알바와 마카나이였다

그 뒤로는 그냥 현실적으로 갔다. 아키하바라 삼겹살집에서 홀서빙을 했고, 키치죠지 한정식집에서도 일했고, 타치카와 쪽 김밥집에서도 일했다. 결과적으로 일본 생활 초반 알바는 거의 한국 식당 위주였다.
이쪽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. 마카나이가 컸다. 그때는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써야 했고 늘 돈이 빠듯했다. 식비가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엄청 컸다. 삼겹살집에서는 남은 밥으로 볶음밥 만들어서 챙겨 가기도 했고, 김밥집은 더 직관적이었다. 하루 지나면 못 파는 김밥은 알바가 가져가도 됐는데, 그걸 냉장고에 넣어두고 며칠씩 먹었다.
특히 백화점 푸드코트 안에 있던 김밥집은 재밌었다. 다른 가게들도 다 남는 음식이 있으니까, 알바들끼리 남은 음식으로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다. 김밥 주고 케이크 받는 식이었다. 그 시절엔 그게 꽤 소중했다. 거창하게 들릴 필요도 없이, 그냥 실제로 배가 덜 고팠다.
신오쿠보 알바에 대해서
초반에는 이상한 고집도 있었다. 일본어를 빨리 늘려야 하니까 신오쿠보에서는 알바하면 안 된다고 혼자 생각했다. 한국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진짜 일본 생활 같다고 여겼던 것 같다.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식의 말도 괜히 크게 받아들였고.
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꼭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. 집이 가깝고 조건이 괜찮으면 그냥 신오쿠보에서 해도 됐을 일이다. 너무 의미를 크게 부여했던 것 같다. 결국 중요한 건 알바 위치보다,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텼느냐였으니까.
돌이켜보면 일본 생활 초반은 대단히 계획적이었던 시기가 아니라,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몸부터 던지던 시기였다. 그래서 더 웃긴 일도 많았고, 지금 썰로 풀 수 있는 장면도 많이 남았다. 카페 알바를 구하러 갔다가 전혀 다른 데서 면접을 보고, 떨어지고, 한식당 마카나이로 버틴 시간까지 포함해서 그 시절은 꽤 정신없었는데 또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.
